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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BLESSE(하이블레스) 통권 7호 (실미원농장 신순규) -People & Life (2008년)

실미원 2010. 10. 7. 23:09

 

 

연꽃향기 물든 섬마을 농부의 행복이야기


 

 

 

연꽃향기 물든 섬마을 농부의 행복이야기

실미원 농장지기 신순규, 장명숙 부부

 무의도에서 실미도로 들어서는 길목, 바다로 향하던 사람들의 발길이 멈춘다.
넓은 토지 위로 늘어선 포도넝쿨과, 농장 한편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련에 호기심이 발동한 것.
갖가지 색을 뽐내는 연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너나 할 것 없이 카메라를 꺼내들게 되는 곳.
봄이면 연꽃이 만개하고, 가을이면 포도향이 넘실대는 실미원 농장이다.
그리고 그곳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바로 농장지기 부부의 따뜻한 정이다.
땅을 사랑하고 씨앗의 가능성을 믿는 그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부부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自然, 그곳과 사랑에 빠지다.

 국내최초 포도 수경재배 성공, 신지식인 대통령상 수상,
친환경유기농 인증농가 등 화려한 수식어와 달리 실미원의 정경은 고요했다.
농장을 들어서자 은은하게 연잎차를 끓이는 향이 퍼졌고, 뭍 손님을 맞이하는
부부의 얼굴에는 소박한 웃음이 번졌다.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주신 거죠.”

7대째 무의도에서 대를 이어오고 있는 신순규씨와 달리
아내 장명숙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도시 아가씨였다.
그런 그녀가 교회의 활동으로 섬마을에 오게 된 것이 벌써 20여 년 전 일이다.
지금이야 30분 간격으로 배가 뜨니 뭍과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지만
그 시절만 해도 하루에 한 번 배가 뜨는 외딴 섬이었다.
온통 생소하기만 한 그곳에서 만난 시골총각은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라며 당당하게 굴었다.
독신의 삶을 주장하며 일에만 매진하던 그녀가 섬총각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가족들은 물론 친구들까지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제가 이곳으로 올 때 친구들은 저를 불쌍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 친구들이 안쓰러워요.

지금 제가 느끼는 행복, 자연이 주는 무궁무진함을
그들은 알 수 없으니까요.”

自然, 비우고자 하니 채워진다.



1만평 가량의 넓은 면적에 쌀과 포도를 키워왔고,
작년부터는 신순규씨의 오랜 꿈이었던 연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2천통 가량의 연잎이 너울대고, 연꽃 향이 무의도를 물들이자
도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연이 자라나는 모습이 기특하고 아름다워 매일같이 사진을 찍고
홈페이지에 영농일기를 작성하자,
이를 보고 얼마 전에는 춘천시청에서 연 종자 1200개를 주문 해왔다.
국내의 어느 농가에서도 그만큼 대량의 연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며
꼭 실미원 농장을 고집했다고 한다.
처음 그들이 연 재배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에만 해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성과였다.
몇 차례의 실패를 거듭했던 포도 수경재배를 인정받은 지난 2002년,

신순규씨는 신지식인으로 선정되어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컴퓨터 시설까지 도입해 그 규모를 넓히고 수확량도 대폭 늘려갈 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미래는 탄탄대로라 생각했다.
그러다 2005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그들의 소중한 꿈이 불에 타버렸고,
한동안은 모든 것을 잃었다는 생각에 좌절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새로이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

"역시 채우고자 하면 먼저 비워야 한다는 말이 맞는가 봐요.
“ 빈 물 잔에 새로이 물을 채울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을 비우니까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부는 전국의 연 농가를 찾아다니며 연에 대해 공부했고 지금 연 재배는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었다.

"연꽃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연꽃 보겠다고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오는 사람도 많아요.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면 섬 전체에 좋은 일이죠. 
이제 농가도 단순히 농산물을 파는 게 아니라 문화를 파는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의 농업은 우리를 배불리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온갖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지금은 농가도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 부부의 주장이다.
연꽃의 열매는 약으로 쓰고, 연근이나 연잎은 식용으로 쓰며,

연꽃의 향기와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이끈다.
이정도면 대체 작물로 손색이 없다.

自然, 그 무한한 가능성을 믿다.


아내는 남편을 고집불통이라 표현했다.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인터뷰에 응해주는 신순규씨의 어떤 면이
그토록 고집스럽다는 것일까. 이들과 함께 농장을 둘러보기 시작하자 곧 의문이 풀렸다.

그의 외고집이란 바로 20년간 꿋꿋하게 지켜온 농사 철학이었다.

“지금 세상에는 병이 너무 많아요. 나쁜 먹거리 때문이죠. 제 농사철학이요? 다른 거 없어요.
바른 먹거리를 생산해서 사람들에게 줘야 한다는 것. 그게 바로 농사꾼의 행복이에요.”

그 평범한 진리를 지키기 위해 그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 내버려둔다.
농약과 제초제를 일절 사용하지 않으니 땅에는 온갖 잡초가 무성하다.

“잡초는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아요.

그런 잡초조차 살 수 없는 땅을 만들고 그곳에서 자란 식물을 사람에게

먹으라고 할 수는 없지요.”

비가 많이 와도 풀과 열매가 나누어 가져가기 때문에 포도가 하나도 무르지 않았고,
벌레들은 열매보다 잎에 더 관심을 보였다.
또한 땅 속에 식물의 뿌리가 많으니 공기가 소통하여 토질이 개선되었다.
자연이 알아서하고 사람은 그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준 것이다.

“식물들은 다 제각각의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에 저마다 싹을 틔울 때를 판단하고
스스로 성장할 능력이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너무 조급하게 바라고 재촉해요.”
그의 설명에 문득 부끄러워진다. 우리는 너무 조급하게 욕심 부리며 살고 있지 않은가 하고.


 

自然, 사람과 소통하다.

 

 실미원의 홈페이지는 언제나 새롭다.
대부분의 농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전자상거래 홈페이지와 달리 따뜻한
일상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고된 농사일을 마친 저녁,
부부는 컴퓨터 앞에서 서로의 차례를 기다려 실미원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날그날 부부가 올리는 영농일기와 사진에는 인터넷회원들의 관심어린 댓글이 달린다.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농촌진흥청의 도움을 얻어 홈페이지를 연 지가 어느덧 햇수로 7년째.
인터넷 회원 수만도 적지 않다.

“처음엔 실미원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아무리 수도권에서 지척이라지만 그래도 배 타고 들어와야 하는 섬이니까
한계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판매보다는 우리 회원들에게 건강한 농산물과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는 목적이 더 커졌어요.”

부부는 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전국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실제로 인터넷회원들은 종종 실미원을 찾아와 농사일을 돕는다.
그들은 땀 흘려 일하고 농산물을 사가면서도 도리어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어떤 회원은 몇 달 만에 한 번씩 실미원을 방문해도 매일같이 온 것처럼 친근하다 말한다.
농산물의 생산과정을 공개하고자 꾸준히 올리고 있는 영농일기와,
언제나 변함없는 부부의 따뜻한 정 때문이리라.

연꽃이 피면 무의도에 온 여행객들이 실미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차를 세운다.
그들과 연잎차를 마시며 세상 이야기를 나눌 때 부부는 삶의 작은 행복을 느낀다.
실미원에는 어린 손님들의 방문도 많다. 유치원, 학교, 복지관 등의
단체에서 농장체험을 하고 싶다고 신청을 해오면

부부는 숙박을 제공하고, 농사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준다.
아이들에게 실미원은 별천지와 같다. 땅에서만 자라는 줄 알았던 포도나무가 상자에서
자라는 신기한 모습에, 한낮이 되면 봉우리를 닫아버리는 연꽃, 토종닭과 오리,
골계 등을 구경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이들에게 흙장난을 시키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 컴퓨터는 만져도 흙 만질 기회는 거의 없잖아요.
우리 자연이 소중하고 우리 농산물 귀하다는 거 스스로 느끼고 경험하게 하고 싶어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 그 경계를 잊은 지 오래라고 말하는
들에게서 자연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일을 이야기하며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그들,
진정한 행복이란 이처럼 무언가를 얻을 때가 아니라
욕심을 하나씩 버릴 때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