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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풍랑 맞서는 ‘신세대 농사꾼’ - 2006년 1월 4일 조선일보

실미원 2010. 10. 24. 17:33

WTO 풍랑 맞서는 ‘신세대 농사꾼’
인천 무의도 농장지기 신순규씨
친 환경 농법으로 신 지식인 선정 都·農 먹거리 연결위해 동분서주


“우리 가족 다들 건강하게, 우리 땅도 튼튼하게….”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오전 6시. 인천 앞바다에 떠있는 무의도(舞衣島) 국사봉(236m)에서 ‘실미원(www.silmiwon.net)’ 사람들 30여명이 구름 사이로 언뜻 비치는 붉은 기운을 향해 빌었다. 실미원 농장지기 신순규(申淳奎·45)씨와 인터넷 회원 가족들이다.

이들에게 먹거리 파동은 먼 이야기다. 신씨는 친환경농법의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이다. 지난 2002년엔 흙 대신 양분(養分)을 섞은 물에 포도를 키우는 유기농법인 수경재배를 인정받아, ‘신(新)지식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요즘 전국의 유기 농가를 찾아 다니기 바쁘다. 인터넷 회원 120명과 연결해 주기 위해서다. “우리 회원들 먹을 걸 제가 다 책임져야 하는데, 우리야 포도하고 쌀만 하니까 그게 안 되잖아요.” 배는 철원·나주, 사과는 영주·봉화, 고기는 파주, 키위는 고성, 인삼은 횡성, 채소는 김포·익산, 된장·고추장은 일산 등으로 농가와 도시 회원들을 연결해 준다. 이제 제주도에서 감귤 농가 두어 곳만 더 섭외하면 된단다.

신씨의 해법은 이처럼 농촌과 도시를 직접 연결하는 것이다. 대규모로 농사짓는다고 많이 남는 게 아니라고 한다. “우리 회원들은 제주도에서까지 날아와 우리 농사 대신 지어줍니다. 하루내 농사 지어주고 나선 꼬박꼬박 고맙다고 말해요. 땀 흘리게 해 줬다고, 일하게 해 줬다고….”

신씨는 이곳, 무의도에서 7대째 산다. 영종도와 실미도 사이에 있는 이 섬엔 320가구가 산다. 지금은 30분 간격으로 배가 다니지만,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 1번밖에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콩을 심었다. 농부 경력 20년째인 아들은 10년 전 포도를 선택했다. 첫해 수경재배를 시도했다가 완전히 망했다. 시장에 내다 팔기는커녕 간신히 종자만 남았다.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지금은 일반 농약 포도밭의 70% 정도로 수확량을 늘리는 데 성공했다. 신씨네 비닐하우스에는 지금 물에 뿌리내린 포도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정부는 믿지 않는다. 옛날, 정부에서 소가 돈 된다고 하면 소를 길렀다. 반값도 못 건졌다. “지금 보니까 그냥 정부 반대로 하면 되더라구요. 정부 말 듣고 유리온실 했다가 망한 사람 많아요. 재작년에도 그렇죠. 정부가 콩이 돈 된다고 심으라고 해서 작년에 콩 심은 사람 전부 쓰러졌거든요.”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던 신씨, 갑자기 핏대가 섰다.

“WTO가 뭡니까. 내것 팔아 먹으려면 남의 것 사주자 그거잖아요? 반도체, 냉장고 파는 거 좋다 이거요. 그렇게 했으면 농민들이 농사 지어서 먹고 살게는 해 줘야 할 거 아니냐 이 말이오. 미쳤습니까. 농민들이 아무리 농한기라고 홍콩까지 가서 데모하게. 다 이유가 있죠. 소련도 빵이 없어 개방(開放)하다 망했고, 북한도 쌀 없어서 저 모양으로 사는데 우리나라도 몇년 후에 쌀이 부족할지 누가 알겠어요.” ‘젊은 농부’가 흥분했다.

잔설(殘雪) 사이로 꿩 수십마리가 푸드득거리며 날았다. “우리 농민들도 마찬가지죠. 자기 새끼같이 귀중한 농산물들을 돈으로 바꾸는 기술이 없어요. 그게 제일 중요한데.” WTO 쌀협정 10년 유예기간 동안 정부만 바라볼 뿐 준비한 게 없었다는 것이다.

신씨는 오는 10월 회원들과 함께 발로 포도를 밟아 즙을 내서 포도주를 만들 계획이다. 농부 말대로라면, “달콤한 포도 향(香)이 섬 너머 뭍으로 날아갈” 것이다.



                        ▲ 신순규씨가 호밀밭을 걷고 있다. 호밀은 자연 퇴비로 쓰기 위해 재배한다.
                           신씨가 키우는 오리(작은 사진)는 잡초도 뽑고, 해충도 먹어 치우는 ‘농사꾼’이다.
                           김용국기자 young@chosun.com